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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날개달기    
작성일 2014-03-24 (월)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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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lsa (엘자) ”

 


 

프렌치 팝의 요정 이라고 불리울 만큼 청초한 외모와 매혹적인 목소리로 사랑받고 있는 프랑스의 여가수 엘자(Elsa Lunghini).

1950년대와 1960년대 한창 샹송이 전세계적으로 사랑받던 시절의 샹송은 분명 프랑스적인 음색을 가지고 있었다. 아코디언과 시적인 가사 등 이 시절의 음악은 파리를 느낄 수 있는 음악이었고 사람들은 이런 샹송을 사랑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샹송은 우리의 주위에서 사라지기 시작했고 간간이 들려오는 프랑스의 대중음악은 우리가 생각하는 샹송이라기 보단 그저 프랑스어로 된 팝 음악이란 생각이 들게 하는 음악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 프랑스의 대중음악은 다시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이번엔 샹송이란 단어가 아닌 프렌치 팝이란 단어로 말이다. 엘자는 이런 프렌치팝의 대표적인 여가수로 군림하며 많은 사랑과 인기를 누렸다.


 

1973년 5월 20일 화가인 어미니 크리스티나와 배우겸 작곡가겸 사진작가인 아버지 조르쥬 링귀니(Georges Lunghini) 사이에서 태어난 엘자는 부모님의 예술적 재능을 그대로 물려받아 가수로서 뿐만아니라 본국인 프랑스에서 영화배우로서도 명성을 떨쳤다. 무엇보다도 음악적인 감각은 작곡가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그녀의 아버지는 엘자의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앨범에 참여하면서 그녀의 음악적 감각을 뛰어난 작곡 실력으로서 더욱 든든히 뒷받침 해주고 있다.


 

엘자는 8세에 아역배우로 영화 <Garde A Vue>(1981)에 출연했고 13세 때인 1986년, 영화 <La Femme De Ma Vie>에 출연 중 감독에 의해 가수로도 발탁되는 행운을 거머쥐게 된다. 영화의 주제가 "T'en Vas Pas"를 노래하며 강한 호소력과 뛰어난 가창력으로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기 시작한 엘자의 첫 싱글은 130만장이라는 놀라운 판매고를 기록하였고, Top 50에 당당히 1위를 기록하며 엘자의 존재를 대중에게 깊이 각인시키게 하는 계기를 마련하는데 성공했다.


 

엘자는 첫 앨범의 성공에 만족하지 않고 이듬해인 1987년, 아버지 조르쥬 링기니가 만든 "Quelque Chose Dans Mon Coeur"을 히트시켰으며, 곧이어 1988년 싱글 "Jour Ne Neige"로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곧 엘자는 이 곡들이 담겨있는 데뷔 앨범 [Elsa](1988)를 발매하기에 이른다. 특히, 조지 벤슨(George Benson)의 원곡을 리메이크해서 부른 "Nothing's Gonna Change My Love For You"를 빅 히트시켰는데, 이 곡은 미국 하와이 태생의 하이틴 스타 글렌 메데이로스(Glenn Medeiros)와 듀엣으로 불러 더욱 더 인기를 얻었다. 글렌 메데이로스와의 듀엣으로 부른 "Un Roman D'amitie"은 우리나라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꾸준한 사랑을 받으며 감동을 전해주었다. 이 앨범을 통해 엘자는 데뷔때에 버금가는 제 2의 전성기를 누리며 프랑스 10대들의 우상으로 군림하게 된다.


 

계속해서 엘자는 영화 출연을 병행하면서 1990년 두 번째 앨범 [Rien Que Pour Ca]를 선보였는데 첫번째 앨범과 마찬가지로 아버지가 작곡한 곡들로 채워져 있다. "Pleure Doucement"와 "Qu'est Ce Que Ca Peut Lui Faire", 엘자가 작곡한 타이틀 곡 "Rien Que Pour Ca" 등이 좋은 반응을 얻었으나 엄청난 성공을 거둔 데뷔 앨범에는 미치지 못했다.


 

1990년 11월 15일부터 25일까지 엘자는 모든 샹송가수들의 꿈의 무대인 Olympia(올랭삐아)에서 공연을 가졌는데 충실한 내용과 침착한 무대매너로 팬들에게 그녀의 또다른 면모를 보여줬다. Olympia(올랭삐아)는 에디뜨 삐아쁘(Edith Piaf)와 같은 대스타의 공연이 펼쳐지기도 했던 명예의 전당으로 일컬어지고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1992년 세번째 앨범 [Douce Violence]를 내놓으면서 엘자는 긴 머리를 짧은 쇼트 스타일로 바꾸고 파격적인 의상을 입는 등 이미지 변신을 위해 안간힘을 썼다. 또한 이전보다는 한층 성숙하고 다양한 음악을 추구하려는 노력을 보였다. "Bouscule-Mio", "Etre Ensemble" 등이 히트하였으나, 엘자의 너무도 갑작스런 변신에 팬들이 당황했는지 세번째 앨범은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다. 엘자는 앨범 발표 후 내한하여 국내 팬들에게 기자회견과 팬 사인회 등의 일정을 통해 정식으로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긴 휴식기를 거치면서 아기 엄마가 된 엘자는 보다 성숙해진 모습으로 샹송계에 재등장해 1996년 네번째 앨범 [Chaque Jour Est Un Long Chemin]을 발표하여 내면 깊숙이 우러나오는 음악에의 열정을 다시 보여주었다. 이 앨범에는 특히 샤데이(Sade), 에브리싱 벗 더 걸(Everything But The Girl), 빠뜨리샤 까스(Patricia Kaas) 등의 앨범을 제작한 바있는 프로듀서 로빈 밀러가 참여했었는데, 포크풍의 간결한 음악으로 채워진 네번째 앨범은 나름대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1997년에는 베스트 성격의 앨범 [L'essentiel(1986-1993)]을 발표하였다.


 

오랜 공백기를 거친 2004년, 앨자는 다섯번째 앨범 [De Lave Et De Seve]을 발표하였으며, 앨범 발표 후 가진 파리에서의 공연 실황을 DVD로 만들어 발매하였다. 


 

우리나라에는 1997년 2월 세종문화회관애서 내한공연을 가진 바 있으며, 2002년 월드컵 당시 프랑스 대표팀 수비수 리자라쥬(Bixente Lizarazu)의 애인으로 다시 방한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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